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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별세...81년 삶, 따뜻한 국민 영웅

by 지킴story 2025.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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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별세… 81년 삶, 무대 위 따뜻한 국민 영웅으로 기억되다


2025년 5월 9일, 늦은 오후의 햇살이 뉘엿뉘엿 기울어갈 무렵, 대한민국 방송계는 슬픔에 잠겼다. '뽀빠이 아저씨'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방송인 이상용 씨가 향년 8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는 비보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 병원을 다녀오던 길, 갑작스럽게 쓰러진 그는 서울성모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지만 끝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사인은 심정지로 추정되며,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유족과 지인들은 깊은 슬픔 속에 빈소를 마련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언제나 푸근한 미소로 국민들과 함께했던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따뜻한 인간미를 가슴에 새기며, 영원히 기억될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1944년, 충남 서천에서 피어난 작은 씨앗


1944년, 이상용은 충청남도 서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인정 넘치는 고향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속에서 그는 꿈을 키웠다.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여 학업에 정진한 그는, 1971년 CBS 기독교방송에서 MC로 데뷔하며 방송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1975년부터 KBS에서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였다. 튼튼한 팔뚝을 자랑하며 시금치를 즐겨 먹던 만화 캐릭터 '뽀빠이'를 닮았다 하여 얻게 된 '뽀빠이 아저씨'라는 별명은, 순식간에 전국민적인 애칭이 되었다. 그는 특유의 친근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곧 '뽀빠이 아저씨'는 단순한 방송인을 넘어 모든 국민들의 친구이자 친근한 형님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우정의 무대', 눈물과 웃음으로 엮어낸 감동의 무대


이상용의 가장 빛났던 무대는 단연 MBC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던 '우정의 무대'였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그는 전국 각지의 군부대를 순회하며 장병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투박한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의 풋풋한 모습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그는 진심으로 어루만졌다.

"고향 앞으로!"라는 그의 우렁찬 외침은 90년대 청춘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명대사로 남아있다. 특히 그는 무대 뒤에서 가수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네고, 군 장병들의 사연을 직접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의 따뜻한 눈빛과 진심 어린 마음은 그가 단순히 진행자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깊은 애정을 가진 진정한 방송인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우정의 무대'는 단순한 오락 프로그램을 넘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소통의 장이었다. 이상용은 그 중심에서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며, 국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했다.

연예계의 애도 물결, "진심이 따뜻했던 선배"


이상용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연예계는 슬픔에 잠겼다. 동료 연예인들은 그의 따뜻한 마음과 후배들을 향한 헌신적인 모습들을 회상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가수 태진아는 SNS를 통해 "늘 후배를 아껴주시던 형님, 부디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라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방송인 김제동은 "우리가 방송을 한다는 게 어떤 책임을 지는 일인지, 뽀빠이 형님을 보며 배웠다"고 회상하며 그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개그맨 김구라 역시 라디오 방송에서 "진짜 방송인이란 무엇인지 보여주신 분"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수많은 후배 방송인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추모하며 슬픔을 함께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후배들에게 항상 '몸 건강해야 오래 방송할 수 있다'고 조언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선한 영향력을 남기고 가셨다"고 말하며 그의 따뜻한 마음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추억했다.

진정한 국민 봉사자, 그의 이름 영원히 기억되리


이상용은 방송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2009년에는 '뽀빠이 유랑극단'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무료 공연을 펼치고 자선 활동에 힘썼다. 그는 고아원과 요양원 등을 방문하여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며 평생을 '누군가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동백장, 체육훈장 기린장,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등을 수여했다. 그는 단순한 공로를 넘어, 진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빈소와 유족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발인 예정일은 아직 미정이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두 아들, 딸이 있다.

그가 떠난 무대는 텅 비었지만… 그의 말과 미소는 영원히


"세상에서 제일 어렵게 태어났지만, 지금 가장 건강한 뽀빠이가 된 게 자랑스럽다."

그는 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는 그렇게 살아냈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겸손하고 유쾌하고 따뜻했던 그의 모습은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상용이라는 이름, 그리고 '뽀빠이 아저씨'라는 정겨운 애칭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그가 무대에서 외치던 "고향 앞으로!"라는 외침은 이제 그 스스로를 향한 작별의 인사처럼 들려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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